50편쯤 되는 성장물 애니메이션은 당연히 스케일이 큰 작품이다. 그러니만큼 그만한 퀄리티를 내재하고 있는 게 보통이다. 에우레카 세븐도 큰 스케일과 훈늉한 퀄리티를 두루 갖추고 있는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성장물"이 가지는 모든 패턴을 그대로 따라가면서, "성장"에 대한 감동과 함께, 그 의미를 놓치지 않았다는 점에서 상당히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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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소년이 있다. 흔히 있을 법한, 꿈과 희망을 가지고 있고, 그만큼 절망에 빠져있고, 그만큼 시시해하고, 또 그만큼 소망하는. 많은 성장물이 그렇듯이 소년은 여행을 떠난다. 어떤 "진리"를 찾기 위해서. 여행을 하면서 소년은 행복과 절망을 느끼고, 갈등을 겪고, 스승을 만나고, 다시 삶의 테두리 속으로 들어와서 나름대로의 가치를 세운다. 관객은 소년의 여정을 따라간다.
소년 랜튼이 찾으려고 했던 표면적 진리는 "에우레카"라는 소녀로 나타난다. 에우레카는 "절대적 진리자"답지 않게, 혹은 "절대적 진리의 표상"답지 않게 가변적이다. 화를 내고, 토라지고, 당황하고, 눈물 짓고, 방황하고, 행복해 하고, 상냥하다. 자신이 따라가는 길이 흔들릴 때마다 소년 랜튼 역시 마찬가지로 흔들린다. 그 흔들림 속에서 "에우레카"가 가지고 있는 단단한 진리를 찾아낸다.
소년 랜튼의 삶에는 많은 "스승"들이 등장한다. 그 스승은 할아버지이기도 하고, 동경하던 홀랜드이기도 하고, 따스하게 감싸줬던 찰스와 레이이기도 하고, 다른 월광스테이트의 멤버이기도 하고, "보다락"의 신도들이기도 하다. 다양한 삶과 조우하고, 다양한 삶 속에서 자신의 삶을 찾아나가는 과정은 스펙터클하면서도 따뜻하다. 어떤 삶에도 "옳거나 그르다는" 기준을 가져다 댈 수 없다. 다만 그 삶 그 자체로서 숨쉬고 살아있을 뿐이다.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랜튼은 "삶의 생명력"을 배워나간다.
랜튼은 결핍된 소년이다. 아버지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고, 누나에게 버림받았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사랑하는 리프를 할 수 없는 절망적인 마을에서 태어나서 자랐다고 믿는다. 부모같은 존재를 잃어버렸다는 것. 원초적인 결핍이다. 극복할래야 극복할 수도 없다. 있는 그대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상처를 끌어안고 가는 수밖에 없는 종류의 결핍이다. 랜튼은 "지켜지지 못했"지만 "지키기 위해"서 길을 떠난다. 자신에게 결핍된 부분을 표출하면서 채우려고 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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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표출"은 "리프"라는 상징적 행위로 표현된다. 랜튼이 도구로 사용하는 것이 넓은 하늘을 가로지르는 "서핑"이라는 건 주목할만하다.
여타 제반 스포츠 중에서 서핑·육상·수영같은 종목들은 자연을 있는 그대로 느낄 수 있게 하는 자연친화적 운동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서핑같은 경우는 특별하다. 자연을 완전히 신뢰하고 자기 자신을 자연과 일체화시키지 않으면 금세 물에 빠지고 만다. 넓은 하늘 위에서 하는 "서핑". 자연과 일체화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불어오는 바람(파도)을 신뢰하고 그와 함께 몸을 맡기고, 같은 길을 걸어나가야 한다. 이 애니메이션에서 "리프"라고 불리는 이 서핑은 그래서 더욱 상징적이다. 리프 자체가 애니메이션을 그대로 주제화하고 있다고 봐도 무리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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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튼을 주체로 하고 있으면서 이 애니메이션은 두 명의 서브 히어로를 더 내세운다. 랜튼의 "히어로"인 홀란드, 랜튼의 "반대자"인 도미니크가 그들이다. 랜튼이 고뇌할 때, 이들 역시 고뇌하면서 성장한다. 이 애니메이션은 "소년들의 성장"물이다.
여기에 낫살만 격하게 처먹은 볍신 소년이 하나 있다. 역시 "리프"를 하고, 역시 결핍되어 있다. 형에 대한 열등감, 실패한 연애. 그리고 그 옆에 진리를 일깨워 줄 현인도 하나 붙어있다. 하지만 볍신 소년은 볍신이라 자기 옆에 있는 현인이 현인인 줄 모르고 뻗대기만 한다. 자기 혼자 세상의 절망을 다 안은 것마냥 착각하고 살아간다. 소년은 절대로 열리지 않을 것만 같다.
꽉 다물려있던 소년은 많은 삶들을 거치고, 또 본다. 그건 아직 소년인 홀란드의 눈으로 보는 게 아니다. 또 다른 소년, 랜튼의 눈이다. 랜튼이 변해가고 자라는 모습을 통해서 홀란드는 서서히 열려간다. 아주 많은 시간을 거쳐서, 또 아주 많은 역경을 거쳐서. 자기 삶에서 도망가지 않고, 자기 삶을 있는 그대로 응시할 수 있게 되고서야, 홀란드는 자기 옆에 있는 현자를 눈치챈다. 고뇌하고 분노하면서 계속해서 소년을 지켜온, 역시 가변적인 여신. 홀란드는 랜튼보다 더 길게 여행을 계속해 와서, 겨우 삶을 깨달아간다.
도미니크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아간다. 도미니크가 겪어나가는 과정은 결코 따뜻하지 못하다. 도미니크는 반복되는 부정과, 반복되는 버려짐, 그리고 불안 속에서 고뇌한다. 결국 도미니크가 자신의 삶을 자기 손으로 쥐는 것 역시 "지키기 위해"라는 마음 때문이다. 완전히 결핍되어 있는 한 영혼이, 다른 영혼의 결핍을 채워줘야겠다고 생각하면서(그렇게 자신의 영혼을 채워나가겠다고 결정하면서). 도미니크와 랜튼은 완전히 반대편에 서 있는 만큼 완전히 닮았다. 자신의 손으로 스스로의 영혼을 치유해 낸, 말하자면 영웅들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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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 소년이 지켜낸 진리, 에우레카라는 건 어디에 있는 건가. EUREKA는 "발견"이다. 언제나 거기에 있었던 사실, 현상을 뒤늦게 "발견"하는 거다. 물 속에 뭘 집어넣으면 부피를 계산할 수 있듯이. 산소가 O2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듯이. 이해하기 위해서 연구하고, 생각하면서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그 "발견"은 화해의 길을 연다.
아무 것도 쓰여지지 않은 백지와 같다고 묘사되는 에우레카는 "푸른 별" 지구에서 왔다. "널 만난 이 별을 지키겠다"고 랜튼은 이야기 하고, 에우레카 역시 마찬가지다. 인간이 사라진 그 지구에서 온 "인간형" 에우레카. 서핑(리프)과 바람에서 보여지듯, 에우레카는 "자연"에 가까운 존재다. 인간인 랜튼은, 자연인 에우레카를 사랑한다. 인간에게서 미움, 증오, 슬픔, 행복, 기쁨, 사랑, 온갖 면면들을 기록하고, 에우레카는 그것이 결국 "사랑"으로 합치될 수 있는 거대한 생명이라는 사실을 인지한다.
"코랄리언"은 계속해서 합쳐지는 것밖에 할 수 없는 생명체다. 합쳐지면서 서로를 이해하고, 합쳐지는 걸로 소통하려고 한다. 상당히 "인디언적" 사고방식이다. 우리들은 땅의 일부이기 때문에 당신들에게 땅을 팔 수 없다고 말했다던 시애틀 횽처럼. 하지만 실제로 사람들은 그렇게 살아가지 않는다. 땅을 사고 팔고, 땅 위에서 군림하며, 땅을 개발한다. 땅과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땅"으로서의 코랄리언은 완전히 다른 체계를 가지고 이제 소통해야 한다.
인간은 소통하려고 하지 않기도 하고, 공격하기도 하며, 증오를 틔워나가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 그건 인간과 코랄리언 모두가 함께 파멸하는 길에 다름아니다. 에우레카와 랜튼은 "함께 살아나가는 방식"을 내놓는다. 서로를 이해하고, 아끼고, 사랑하면서. 인간은 충분히 코랄리언, 에우레카로 대표되는 비인간들을 사랑하면서 살아나갈 수 있다고, 감독은 애타게 외치고 있다. 우리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하나되는 힘"을 믿어도 좋다고 말이다. 그래서 이 애니메이션은 랜튼이 찾아낸 진리를, 우리 모두에게도 보여준다.
하나 된다는 거.
같이 살아간다는 거.
미래사회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것도 그렇고, 여러가지 세밀한 설정들을 굉장히 비유적이면서 시적인 방법으로 풀어나간 것도 그렇고(교향시편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아ㅜㅜ), LFO라는 기체의 액션 자체도 굉장히 아름다운데다가, 과학을 바탕으로 한 이 스케일이라니. 확실히 대작이라고 생각한다. 더불어서, 다정하다. 모든 방식들을 끌어안으면서 살아갈 수 있는 삶, 현재를 긍정하면서 아낄 수 있는 삶이 있다면. 그건 또 얼마나 행복한 일일까. 어쨌든간에, 우리한테도 절망할 권리는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이 애니메이션을 본 당신들. 작은 것부터, 큰 것까지. 우리와 함께 살아가야 할 이 별을, 이 꽃과 나무와 풀과 벌레와 새와 소와 돼지와 기린과 토토새들을, 좀 더 사랑하면서 살아가자구요.
+) 덧. OST 굳!